栗谷 李珥(율곡 이이)의 山中(산중) 읽기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

약초를 캐다 문득 길을 잃었는데

千峰秋葉裏(천봉추엽리)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

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이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율곡전서’ 1권에 수록된 ‘산중에서(山中)’라는 시(詩)가 전남 광양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서예가에 의해 행·초서로 발표돼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행·초서로 발표된 ‘산중에서’는 서예가 봉호(峰湖) 소철운 선생이 광양문화예술회관 1·2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제26회 광양·포항 미술교류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행·초서는 한자 서체 중 하나로 행서와 초서가 결합한 서체다. 행서는 반쯤 흘려 쓴 서체이며, 초서는 대단히 흘려 쓴 서체다. 두 서체는 모두 신속한 필기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행·초서는 이 두 서체의 중간에 위치한 형태다,

서예계의 한 원로는 “봉호 소철운 선생의 행·초서는 글자의 획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연결돼 있다. 초서의 간결함을 일부 차용해 필획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며 “글자의 형태를 더욱 분명히 남길 뿐 아니라 형태를 유지하면서 흘려 써 속도와 가독성의 균형을 잘 맞춘 서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필법이 자유스러우며 필획이 단순화되고 생략되는 부분이 있어 봉호 선생의 개성과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획이 끊기지 않고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한자 간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긴다. 이런 연속성은 행·초서를 미적으로 돋보이게 하며 서체에 유동감을 더해준다”고 덧붙였다.

한편, 봉호 선생의 작품세계는 묵향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며 마치 대자연의 숲이 어우러지듯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내면의 세계를 표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봉호 서철운 선생은 한국미협 정회원, 한국미협 광양지부 서예 분과장으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영·호남교류전, 동서교류전, 광양·포항교류전, 탐라교류전 등 20여의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한 바 있다.

제26회 광양·포항 미술교류전은 6월 6일부터 11일까지 6일간의 일정으로 광양문화예술회관 제1·2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창작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봉호(峰湖) 소철운 선생


인터뷰...봉호(峰湖) 소철운 선생

栗谷 李珥(율곡 이이)의 山中(산중)을 작품으로 선택한 배경은?

이 시는 율곡 선생이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3년 상을 치른 후 속세의 번뇌를 잊기 위해 금강산에 들어가 자신의 학문에 대해 고민할 당시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리를 구하고자 입산했지만 스스로 길을 잃었고, 자연의 변화와 숲속 암자의 차 달이는 연기를 통해 깨달음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우리네 인생사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에 선택했습니다.

서예의 많은 서체 중 행·초서로 이 시를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행·초서는 초서의 일부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즉흥적이고 감정이 잘 드러나는 서체입니다. 서예가가 글을 쓰는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기 쉬운 서체로, 서체를 통해 내면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행·초서는 흔히 예술적 표현의 목적으로 사용되며 중급 이상의 수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서체로 한시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예란 어떤 예술이며, 향후 계획이 있다면?

서예(書藝)란 문자를 중심으로 종이와 붓, 먹 등을 이용해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을 말합니다. 또한, 서예는 고고한 예술의 경지이며,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이끄는 예술입니다. 우리의 전통과 역사는 묵향의 고결한 선비정신을 계승해 왔으며, 서예를 통해 고유사상과 철학을 표현해 왔습니다.

이러한 민족예술인 서예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